정치,외교

지금이 해방 후 주한미군 철수주장 정국과 같다.

도형 김민상 2019. 2. 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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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이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 지금은 좌익들이 주한미군 철수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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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1월에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유엔 임시한국위원단을 구성하고 그 위원단의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군사령관이 1948년 초에 활동을 개시한 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하면서 남북한 총선거는 실시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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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북한에서는 19489월 김일성 중심의 형식적인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 여러 나라가 이를 승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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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소총회의는 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의 총선거를 결의하여 19485월에 남한만의 선거가 향해졌고 그해 815일에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그해 12월의 제3차 유엔총회에서는 총선거가 실시된 대한민국을 합법정부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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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남북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된 후에 북한은 곧이어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소련은 이에 부응하여 그해 10월부터 철병을 개시하였다. 이에 미군도 약 500명에 달하는 군사고문단만 남긴 채 남한에서 철병을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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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단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에 의한 계획적인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여 194810월에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이미 완전 무장한 4개 보병사단과 소련제 T34 중형전차로 장비한 제105 기갑대대를 편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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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49317일에는 소련과 북한 간에 조소군사비밀협정이 체결되고, 318일에는 중공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군 25000명이 북한에 인도되었다. 이렇게 북한은 남한을 무력통일을 시키기 위한 구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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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게 무력통일 구상을 하게끔 국외적 요인이 등장하였다. 194910월에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었고, 19496월에 주한미군이 철수를 완료하였으며, 19501월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시킨다는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1949년 말경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 남한의 무력침공 계획에 대한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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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으로는 남로당의 실질적 붕괴에 따라 남한 내부에서 인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김일성은 민족해방을 위한 투사로서의 경쟁에서 박헌영을 압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남한이 아직도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상태에 있었고, 국군의 병력·장비가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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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에서 김일성은 19504월 초 조선노동당 중앙정치위원회에서 무력통일안을 확정시키는 한편, 이러한 침략계획을 은폐하기 위하여 195069남북정당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고 그 다음날인 10일엔 고당 조만식 선생과 남로당 거물 김삼룡과 이주하의 교환협상을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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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50619일엔 남북단일 국회구성을 통한 통일헌법 제정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북한은 전쟁준비를 완료한 후에 위장평화 쇼를 거쳐서 드디어 1950625일 새벽 4시를 기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국군의 병력과 장비가 미미한 대한민국을 무력침공을 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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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전에 충분히 준비되고 계획된 북한군에게 대한민국 국군은 추풍낙엽 신세처럼, 파죽지세로 밀려서 1950627일 서울이 점령되었고, 북한군은 73일에는 한강을 넘어 남진을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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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26일에 북한의 김일성은 이 전쟁을 가리켜 남한을 해방시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하여금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개소리 선동방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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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한 곳에서는 민족해방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인민재판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한의 점령지역에서는 직업동맹·농민동맹·민주청년동맹과 여성동맹 등 여러 전위동맹단체가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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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14일의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정령에 의해서 913일까지 점령지역의 시···()까지도 전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전쟁수행을 위한 동원정책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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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후에 북한의 침공으로 인하여 막대한 재산과 인명피해와 의용군으로 북한에 끌려간 분들이 지금까지 생사도 확인이 안 되는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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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주한미군의 도움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이렇게 발전을 하여 먹을 것의 걱정이 사라지니, 아직도 북한과 동맹의 후예들이 남아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니 가소로운 짓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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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10일자에 따르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택 미군지기에서는 북침전쟁 연습중단 미군 철거!”, “·미 평화협정 체결 이행하라!”, “미군철거, 모든 미군철거!”등의 팻말을 들고 민중민주당이라는 자들이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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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민주당 세력들은 지난 11일부터 이곳에 몰려들어 싱가포르 선언 이행. 미군기지 철거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해외 군기지인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가 주한미군의 심장부로 거듭나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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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중민주당에 맞서서 반대 맞불 집회를 하면서 이곳에서는 새로운 갈등이 유발하면서 이 지역 상인들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 상인들은 미군에 부지를 내주고서도 아무런 반대급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반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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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상인들은 요즘 험프리 캠프 측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부대 장병들에게 안정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갈 것을 권한다고 한다. 반미시위를 하는 이들과의 충돌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팽성읍상인회장은 부대에서 미군들에게 수원이나 서울로 아예 나가서 놀고 오라고 하면 우리는 기지만 내주고 상권은 슬럼화되는 꼴이라며 친미가 문제가 아니다. 돈이 있어야 먹고사는데 시위대가 10명 오면 전경은 500명씩 온다며 이로 인해 손님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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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미군이 철수했을 때 안보 공백이 생기면 북한에게 무력침공의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누구를 위해서 이런 주장을 한단 말인가? 수레바퀴인 역사가 증명해줬다. 미군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대한민국의 평화는 천지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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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쯤 북한에 적화통일을 당해서 아마 북한 주민들처럼 짐승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반만년 역사 이래 중국의 침공을 받지 않았을 때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을 때였다는 것을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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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미북 정상회담으로 북핵이 폐기되고 모든 미사일이 폐기되어도 주한미군은 한국에 주둔해서 안보의 균형을 잡아줘야 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유지해줘야 할 것이다. 중국과 북한·러시아는 우리의 적이다. 우리를 적으로부터 지켜줄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것을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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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