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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파들이 김대중도 건국절이라고 한 것을 부인하고 있다.

도형 김민상 2024. 8.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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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15일의 건국을 부정하며 반대하는 자들은 뉴레프트 친북파들이다 김대중 좌파 정부에서도 1948년 건국을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1998년 6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인너텟 홈페이지 건국 50주년을 맞이했다고 했다.

 

1948년 ‘건국’을 가장 많이 강조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정권은 김대중 정부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6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인터넷 홈페이지 인사말씀(건국 50주년을 역사의 전환점으로)’을 통해 “올해로써 건국 50주년을 맞았습니다.우리 민족에게 지난 50년은 수난과 극복의 연속이었다고 할 것입니다.(중략) 건국 50년은 하나의 매듭입니다. ”고 했다.

그해 8월14일 ‘대한민국 50년-우리들의 이야기전 개막식 말씀’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반대 속에 이뤄졌다”며 1948년 건국을 확인시켰다.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는 ‘정부수립 50년, 제2의 건국’ 등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제2의 건국에 동참합시다)’로 정한 뒤 “광복 53주년 기념일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의 저력을 다시 모아 ‘제2의 건국’을 시작하라는 국민 여러분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건국일’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건국기념일’로 부르기도 했다.김 전 대통령은 ‘건국 50주년’에 이어 8월15일을 ‘건국기념일’로 명명하며 대규모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또 자문기구로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1998년 10월~2003년 4월)를 설립하는 등 누구보다 ‘건국’을 강조했다.

대통령기록관을 살펴보면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연설문 및 홈페이지 등 모든 내용이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으로 기록돼 있다.

광복회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뉴라이트 감별법 9가지’ 에서 뉴라이트를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라고 정의한 뒤 그 중 하나로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를 뉴라이트라고 정의했다.

광복회의 뉴라이트 감별법과 이종찬 광복회장 주장이 사실이라면, 1948년을 ‘건국’‘건국기념일’이라고 공식 발표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뉴라이트이며 친일 인사로 분류된다. 김대중 대통령을 뉴라이트나 친일파로 생각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가 엄청난 역사적 착오를 일으켰거나 아니면 광복회가 역사적 사실을 오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종찬 광복회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정원장으로서 대통령이 연설에서 역사적 착오를 일으켰다면 바로 잡아야 했을텐데 그 당시는 왜 수수방관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 회장은 지난 15일 광복회가 따로 연 광복절 기념식에서 “독립 운동을 폄훼하고 건국절을 들먹이는 이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 기념사가 끝난 뒤엔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이 ‘1948년 건국절은 식민지배 합법화’ 특별 강연을 했다. 광복회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식민지배를 합법화는 뉴라이트 친일인사들의 논리라는 입장을 시종 유지해오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건국 60주년 기념 사업 위원회’의 고문으로 위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 고문단엔 당시 우당기념관장인 이 회장을 비롯해, 김영일 광복회장, 강문규 지구촌나눔운동이사장, 김상하 삼양그룹회장, 김태길 학술원회장, 예춘호 전 의원, 조용기 사학법인협의회회장 등이 포함됐다.

 

정치권에선 “건국절을 문제 삼던 이 회장이 왜 26년 전과 마찬가지로 16년 전에도 1948년 건국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와 관련 오신환 전 의원은 지난 14일 JTBC에서 “이종찬 회장은 2008년 MB 정부 때 당시 건국 60주년 사업 기념위원회의 고문으로 참여했다”며 “그 당시 공식적인 국가 기념 행사로 하기 위한 사업 위원회가 구성됐고, 재미 교포들을 대상으로 한 건국 60주년 기념 특강도 이종찬 당시 우당기념관장이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 들어 건국절을 추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회장에게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주장했고, 결국 이날 정부 행사에 불참하며 야당 의원 100여명이 참석하는 별도의 기념식을 개최했다. 고문 위촉과 관련해 이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올라갔고, 수락한 적도 없으며, 미국에서 고문으로서 특강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들 취임사 등을 분석한 결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한 전현직 대통령들이 직간접적으로 1948년을 두고 ‘건국’과 ‘정부수립’을 혼용해서 썼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광복절 경축사마다 ‘건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함께 사용했다.

대통령기록관 등에 따르면 건국이라는 단어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우리의 각오’라는 제목의 연설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건국 기초에 요소가 될 만한 몇 조건을 간략히 말하면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52년 8월15일 대통령 성명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즉 1948년 8월15일 자유민주 대한민국이 수립됐을 때 그 뜻 깊은 ‘건국’을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민주국민들이 실시했던 것”이라며 “독립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유엔’이 성취한 최초의 업적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립은 한국을 양분하고 그 북반부에 공산제국주의를 유도케 한 2차대전 중 강대국 간에 체결된 불행한 협정을 시정하는 최초의 거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건국을 함께 거론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화국’을 강조했다. ‘건국’이라는 단어는 196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등장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일제 침략 하의 36년간이 우리에게는 고난과 압제가 강요된 민족 수난의 암흑기였다면, (1945년) 광복 23년간의 우리 대한민국 ‘건국사’는 거듭된 좌절과 시련을 거쳐 조국 근대화의 성년기를 맞이하는 국가 재건의 시대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