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분열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에 분노해서 이종찬 조부인 이화영씨는 전 재산을 팔아서 만주로 가서 군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하고 일평생 독립운동을 했는데, 이종찬은 조부의 뜻과 반대로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독립회장을 하는가?
최근 자신이 마치 '역사 해석권'을 갖고 있는 듯, '친일파' 또는 '뉴라이트' 감별사를 자처하는 듯한 이종찬 광복회장은 광복회 주관 광복절 행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를 합법화하게 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1945년 해방 이후 48년까지) 나라가 없었다고 한다면 일제의 강점을 규탄할 수도 없고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종찬 회장 말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수립은 '건국'이 아니란 얘기다. '건국'이라고 할 경우 일제의 식민통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임시정부 등 온갖 독립운동단체들의 활동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게 이 회장 주장의 요지다.
그런데 이 같은 이종찬 회장의 주장은 일제 시절 이역만리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1945년 귀국 뒤에도 노구를 이끌고 '건국'에 '일로매진'했고,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으로 참여했던, 자신의 숙조부(작은할아버지)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임시정부 활동상, 그의 건국관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이시영은 1948년 7월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건국(建國)에 여생을 바칠 각오"라고 그 의지를 밝혔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장 ▲재무부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시영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보지 않았던 셈이다. 또한, 그는 1945년의 해방 역시 '건국'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를 한 경향신문 기자는 "이 박사(이승만)가 대통령으로 피선된다면, 옹은 부통령으로 입각하게 되리라는 설이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시영은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나보다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있는데 나 같은 노후한 인물이 나가서 뭣하겠는가. 그러나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쳐 이 몸이 이렇듯 늙어빠진 만큼 앞으로도 건국에 여생을 바칠 각오이다"라고 답했다.
이종찬 주장에 따르면 이미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됐는데, 한평생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종찬 숙조부' 이시영은 1948년 7월까지도 대한민국이 '건국'되지 않았다고 했을까.
또한,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된 이시영은 같은 달 24일 내놓은 '부통령 취임사'를 통해 "필사의 노력으로 건국홍업(建國鴻業)에 일로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시영 초대 부통령의 취임사다.
"삼천만 일심으로 모든 사(私)와 이()에 초월하여 오직 건국홍업에 일로매진하고 필사노력하여야 될 것이다. (중략) 위로는 이승만 대통령을 보좌하고 아래로는 삼천만 애국동포 여러분의 적극 협력을 얻어 우리의 숙망인 조국광복을 완수하여 빛나는 민족전통을 길이 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세계에 앙양하여 만방과 더불어 공존하고 공영케 하기에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바칠까 한다."
이시영은 1948년 7월 24일까지도 '건국'과 '광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조국 광복 완수'에 바치겠다고 밝혔다. 또 삼천만 국민이 필사의 노력으로 '건국홍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시영의 '질손(姪孫, 조카의 아들 또는 형제의 손자), 이종찬 광복회장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으로 보거나 1919년 임정 출범을 '건국'으로 보지 않는 이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용인하고, 독립운동사를 부정하는 자가 된다.
그런데 ▲이종찬이 전두환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원내총무로 있으면서 동상을 세웠던 집안의 어른 ▲자신의 조부인 우당 이회영의 아우 ▲임시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독립운동가 ▲80 노구에도 여생을 조국광복에 바치겠다고 밝힌 '노지사(志士)'도 그의 '질손' 이종찬식 규정에 따르면 '일제의 강점을 규탄할 수도 없고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되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종찬의 시각에 따르면 1945년 9월 환국 당시 '9살 꼬마 이종찬' 옆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던 '독립투사' 이시영마저도 매국노에 가까운 '친일파'가 되는 것 아닌가. 90 가까운 나이에도 '친일파 감별사' 식으로 나선 이종찬은 자신의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의 과거 발언, 당대 인식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17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이종찬 광복회장을 향해 “이념과 자리 집착은 노욕이라 비판받을 수 있다”며 국민 통합과 국가 번영이라는 원로의 소임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박준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회장이) 일제 밀정이란 철 지난 용어로 반일 감정을 조성하고, 반역자란 비이성적 용어로 이념 갈등을 부채질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으로,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딱한 모습”이라며 “지하에서 지켜볼 우당 이회영 선생(이 회장의 조부)이 혀를 찰 일”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 회장이 과거 인터뷰에서 ‘백범 김구와 우남 이승만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발언한 것을 소환해 “이 인식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역사관이고, 국민통합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철 지난 이념의 잣대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태이자 불필요한 역사 논쟁”이라며 “자리를 탐한다는 지적 역시 사회원로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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