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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한기준 만큼 최악의 중은 없다.

도형 김민상 2010. 11. 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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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명진은 속세 이름 한기준으로 사는것이 낫겠다.

 

역사이래 부처의 제자 중에 최악의 중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강남 노른자 땅에 있는 봉은사 주지로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깨달아 세상의 중생을 중화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 자가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세파에 찌든 사람 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자가 속세를 떠난 중이라고 선량한 중생들을 속이고 있다.

 

부처의 속세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는 인도 카필라 국 정반 왕과 마야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싯다르타 태자는 부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가하여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농부가 방근 간 밭에 꿈틀거리며 나온 벌레를 새가 쪼아 먹는 것이었다.

 

곧이어 더 큰 새가 작은 새를 잡아채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계를 보고, 태자는 엄청남 고뇌를 품고 제단에서 조금 떨어진 염부수라는 나무 아래 명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약육강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뇌는 더 근원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같다. 약육강식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다시 죽음을 맞지 않는가?

 

싯다르타의 깊어가는 번민도 결혼과 궁녀들 속에서 잠시 쾌락과 환락속에서 잠시 벗어는나는듯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 무희들과 어울려 숭을 마시고 노래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궁녀들과 무희들도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깬 싯다르타는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술잔과 여기 저기 쓰러져 잠든 무희들을 보았다. 그 모습이 아름다움 모습이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여기서 아름다움이나 호화로운 생활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았다 '세상에 절대적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큰 기쁨도 일순간이며 슬픔도 순간이다. 젊음도 건강도 절대적으로 불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우울한 명상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태자는 마부 차익과 함께 동쪽 성문으로 나가 별궁으로 향했다. 그때 한 늙은이가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돌아가자 별궁에 가 즐겁게 놀수 없겠다.'고 다시 궁성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태자는 남쪽 성문을 나가 별궁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병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짝 마른 몸에 고통스런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냐 저 사람은 병자입니다. '사람은 늙거나 몸이 쇠약해지면 병이 듭니다 온몸이 본래 활동을 하지 못하고 고통을 받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사리 분별하기 어려워집니다. 태자는 다시 궁성으로 돌아왔다.

 

여러 날을 번민하다가 싯다르타는 다시 서문을 향하여 별궁을 행했다. 마부 차익은 다시 병자나 노인이 눈에 띌까봐 조마조마했다. 조금 가다보니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보였다. 왜 저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 모두 슬피 울고 있지 않은가?

 

저것은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 것입니다. 태자는 죽음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사람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죽음을 맞이하여 다시 이 네가지 요소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음으로써 이 세상 모든 것과 이별하게 된다는 말인가?'

 

서문 쪽을 나갔다가 주검을 보고 돌아온 태자는 이번에는 북쪽 문을 통해 별궁으로 향했다 성에 나가 얼마쯤 갔을 때 한 사람의 수행자를 만났다. 태자는 수행자의 눈빛을 보고 그가 모든 근심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수행자에게 다가가 정중히 절을 했다 "출가하여 수행하면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출가 수행은 무상한 인간의 삶을 벗어나 생로병사가 없는 도를 터득해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출가를 굳히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싯다르타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탄식하는 말투로 "라후라가 태어났구나" 라후라는 장애물이란 말이다. 출가를 결심하고 부왕에게 가서 출가 수행의 뜻을 전하니 부왕이 출가를 막았다. 출가를 막으려는 부왕에게 "아버님 한 나라의 왕이 되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나라의 백성보다 더 많은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을 소멸시켜 지혜를 얻기 위해 출가를 결심한 것입니다. 부왕은 소원을 다 들어준다며 출가만은 말아다오, 만류 했지만 싯다르타는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요'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하였다. 고행 하는 사람이 고행을 통하여 천상에서 태어난다고 해도 고행은 삶이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실망하였다. 좌선을 통해 무념무상에 이르는 방법을 알라 카리마를 통하여 배웠다. 이 수행을 하다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생각하지 않는다.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닦는 것도 역시 나이며, 번뇌의 뿌리를 자른다고 해서 다 끊어진 것은 아니다, 번뇌가 잘려진 자리에 다시 자라는 번뇌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알라 카리마는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출가하여 여러 수행자를 찾아다녔지만 속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한 고타마는 홀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고타마는 우루빌라 숲에서 먹고 자는 것을 줄이면서 며칠씩 좌선에 몰입하곤 하였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때로는 숨을 참고 견디는 수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번뇌와 망상은 끝없이 이어졌고 원하는 개달음은 오지 않았다.그러수록 수행이 부족하다 하여 더욱더 정진하였다.

 

그렇게 6년이 지나갔다. 그 때가지 고타마가 수행한 방법은 고행이었다. 계속되는 고행 속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는 듯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문하여 되었다. '나는 이제까지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왔고, 어떤 방법을 썼는가?' 그리고 지난 6년간 수행을 되돌아 보았다. 

 

고타마는 끊임없이 정진하여 '고행은 또 다른 번뇌의 씨앗이 될 뿐이다 육체적 고통을 이긴다는 생각도 역시 번뇌인 것이다. 이것은 성불의 큰 장애가 된다'며 고타마는 지금까지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절대적인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선정에 들기로 했다, 그리고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마침 해탈을 하였다.

 

고타마가 해탈하게 된 것이 '내가 여기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죽는 한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으리라,'하고 선정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번뇌는 끊임없이 오고 갔다. 아무리 잘라내도 계속해서 다시 싹텄다. '이 번뇌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욕심을 제거하면 번뇌도 사라질 것이다. 상념을 떨쳐버리는 것도 역시 집착이 아닌가?

 

부처는 해탈에 이르면 번뇌가 사라지고, 번뇌의 흐름도 이미 없어졌다. 이제는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니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고 이름한다. 욕심을 버리기 전에는 번뇌가 계속 되므로 해탈을 하려면 번뇌가 사라져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번뇌가 생겨서 해탈에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가 해탈에 이르기 위해 수행했던 내용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것이고, 이것을 쓴 것은 부처 제자 중에 최악인 제자 봉은사 주지 명진 (한기준)을 위해 쓴 것이다. 먼저 부처의 제자는 자기가 번뇌를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갖고서 중생을 제도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한기준 (명진) 봉은사 주지가 보여준 것은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번뇌에 사로잡혀서 자기도 중생하지 못한 인간이 중생을 제도한다고 절간에 주저 앉아서 헛소리만 하고 있다. 명진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전두환만큼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자체가 아직 세상에 대한 번뇌에 사로잡혀서 중생하지 못한 증거이다.

 

부처의 깨달음 세상의 욕심이 번뇌를 가져오게 하고. 그 욕심을 머리지 못하면 번뇌가 오고, 그 번뇌를 버리려고 집착하는 것이 상념이 오게하므로 무욕, 무상, 무지에 이르지 못하면 백번천번 수행을 해도 소용없다고 했다. 부처의 제자로 살겠다고 머리 깎고 중이 된 자가 남의 들보나 보면서 공격해서야 어디 부처의 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을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촌평을 할 정도의 중이라면 일반인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조계종은 부처을 욕을 얻어 먹게 하는 (명진) 한기준을 내쳐야 한다. 이런 자가 계속 중으로 있다가는 우리나라는 동족상잔 보다 더 심한 종교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명진은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우치고 남에게 설법을 전하라! 자신도 깨우치지 못한 자가 남을 깨우쳐 중생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 이상 대한민국과 불자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될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를 이간시켜 분쟁이 일어나게 하지 말고 파계하여 한기준으로 살거라!

 

김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