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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도지사가 1919년 건국은 모순으로 독립운동 할 필요가 없었다.

도형 김민상 2024. 8. 2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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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도지사가 8·15 광복절 행사에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에 대해서 확실한 근거를 댔다 1919년에 건국이 됐다고 하면 나라가 이미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이 필요없고 광복자체도 부정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둘러싼 기싸움이 8·15 광복절을 두 쪽으로 갈라놓는 엄청난 사태로 번진 가운데, 강원도의 수부 도시 춘천에서 치러진 광복절 행사에서의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경축사가 주목받고 있다. 특정 성향 진영의 파상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던 보수 진영의 전열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초반 기세에서 밀리던 보수 진영이 '1948년 건국론'의 이론적 근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김진태가 옳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지사가 구성원으로 있는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도 자신이 미는 특정인이 독립기념관장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같은 사달을 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진태 지사는 전날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한민국 건국일과 관련해 요즘 많이 시끄럽다. 어떤 분들은 임시정부 수립이 이뤄진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한다"면서도 "만약 1919년에 건국이 됐다고 하면 나라가 이미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도 필요없고 광복 자체도 부정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작심 반박에 나섰다.

 

이어 "1948년 우리 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 절차에 의한 선거를 치러 국민·주권·영토를 갖춘 자유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건국의 중요한 요소로 국제사회의 승인이 있는데, 유엔의 승인을 받은 국가는 1948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헌법재판소도 2014년 결정문에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아울러 "1948년 건국이 반(反)헌법적이 아니라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드러났고, 오히려 1919년 건국 주장이 일제강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해 독립운동과 광복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며 "궤변으로 1948년 건국을 극구 부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이종찬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했던 광복회 강원도지부장 등이 퇴장하는 등 소란이 있었지만, 김 지사의 경축사는 현 정국에서의 논란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범 등 임정 요인들 스스로도 1919년은 물론 1945년에도 '건국'이 이미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1948년 건국'이라는 인식이 뚜렷했다는 점 △헌법재판소 결정례와 유엔총회 결의안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백범 김구 선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1월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선포했다. 강령에 따르면 건국(建國)은 복국(復國)에 뒤따르는 단계인데, 복국이란 "일부 국토를 회복한 뒤 당정군의 기구를 국내로 옮겨 국제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취득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건국은 복국 이후에나 규정돼 있어, 임정 스스로도 1919년은 물론 심지어 1941년의 단계에서도 아직 '건국'이 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국제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취득하는 것'이 김 지사가 경축사에서 지적한 '국제사회의 승인'과 관련이 있다. 백범은 '국내 진공 작전'을 벌여 국토 일부라도 회복해야 건국의 요소인 국제사회의 승인을 이뤄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당시 임정을 이끌고 있던 백범은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만일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돼 있었던 것이라면, 일제의 패망이 백범에게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임정의 후원자였던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은 1945년 11월 4일 백범 등 임정 요인들을 상대로 베푼 환송연에서 "조선이 독립하지 못하면 중국의 독립도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당은 조선의 독립을 전력을 다해 원조하겠다"고 연설했다.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라면, 일제가 패망하고도 2개월이나 지난 1945년 11월에 장 총통이 새삼 다시 '조선의 독립'을 언급할 이유가 없다.

 

이후 환국한 백범은 미 군정 시기였던 1947년 3월 '건국실천원 양성소(建國實踐員 養成所)'를 설립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건국'을 실천할 인재를 양성한다는 기구였다. 또 백범은 1948년 3월 1일 경교장에서 민족적 양심으로 건국을 하자는 의지를 담아 '양심건국(良心建國)'이란 네 글자 휘호를 썼는데, 이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다. 모두 아직 '건국'은 실천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백범이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당시 임정을 이끌고 있던 백범은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만일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돼 있었던 것이라면, 일제의 패망이 백범에게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국정원장을 맡았던 김대중정부나, 이를 계승한 민주당 정권이었던 노무현정부에서는 일관해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게 이들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드러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맞이한 첫 광복절이었던 1998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영광과 오욕이 함께 했던 파란의 시기"라며 "제2의 건국에 동참하자"고 역설했다. 199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 50년'이라면, 역산해보면 김 전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던 건국 시점은 1948년 8월 15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김대중정부는 집권 직후 '제2의 건국 운동'을 벌이면서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를 광범위하게 결성했는데, 이 단체의 창립선언문을 살펴보면 "건국 50년 동안 우리는 분단과 남북대립의 질곡 속에서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에 역사적인 '제2의 건국'을 선언했다"고 돼 있다. '제1의 건국'을 50년 전인 1948년으로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제2의 건국 운동'을 추진했던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었던 노무현정부에서도 동일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는 58년 전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6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됐고, 3년 뒤 이날 나라를 건설했다"고 연설해 '1948년 8월 15일 건국'이라는 인식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되레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광복절 경축사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 인식'이 더 선명하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https://v.daum.net/v/20240817070000278